김 종 회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 지정종목광산농악 설장고
- 생 몰1918. 9. 29. ~ 2000. 3. 14.
- 인 정 일1992. 3. 16.
- 전승계보김만석·강성수·최막동 - 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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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金宗會) 선생은 전남 담양군 무정면 출신으로, 20세부터 영광의 김만석, 나주 영산포의 강성수, 광주의 최막동 등 설장고 명인들에게 장고를 배웠고, 35세부터 임방울극단, 여성국극단 등에서 활동하면서 전경환, 김오채 등 호남우도농악 명인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한때 임실필봉농악대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92년 지정 당시 상쇠 정득채, 설장고 김종회, 설북 서창순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광산농악은 현재 광산구 지역에서 넓게 전승되어 왔으며, 영산강 상류의 평야지대인 마륵동의 판굿을 기초 가락으로 하면서 칠석동의 고싸움농악, 소촌동의 당산농악, 산월동의 풍장농악, 평동과 동곡의 걸립농악 등 광산구의 다양한 농악이 집대성된 것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광산농악대는 적게는 20∼30명, 많게는 50∼70명으로 구성된다. 앞치배는 쇠 4∼6명, 장고 6∼8명, 북 8∼10명, 징 3∼4명, 소고 20∼25명, 긴 쇠나발 1명, 쇄납 1명, 기수 3∼5명(영기 2명, 농기 1∼3명)으로 편성되고, 뒷치배인 잡색은 8인(대포수, 양반, 할미, 각시, 조리중, 참봉, 남 무동, 여 무동)이지만, 비리쇠와 홍작삼이 추가되기도 한다.
1988년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광산소촌농악’으로, 1989년도엔 ‘광산마륵농악’으로 참가하여 입상하였고, 1990년 제31회에선 전경환의 동생인 전경석이 상쇠로 출연하여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천 대 용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 지정종목판소리 고법
- 생 몰1930. 9. 3. ~ 2001. 4. 29.
- 인 정 일1997. 7. 3.
- 전승계보김명환·김성권 - 천대용 - 나연주·배영배·권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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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용(千大龍) 선생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에서 부친 천두성과 모친 경주 최씨 사이에서 1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던 그는 17세가 되던 1946년 보성의 정응민 문하에 들어가 3년간 판소리 〈심청가〉를 배웠다. 이후 박봉술에게 〈적벽가〉와 〈수궁가〉를 배웠으며, 국가무형유산 제59호 판소리고법 최초 예능보유자였던 김명환에게 북을 배우면서 명창보다는 고수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1965년 거처를 서울로 옮기면서 생활고 해결을 위해 잠시 생선장사도 한 바 있는데, 그때 안산의 이정업을 만나 판소리 고법을 익히고, 1970년경 김성권 명고에게 북의 변이 가락을 익히면서 본인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해갔다. 장월중선에게는 아쟁과 칠현금을 배워 이 역시 명인다운 면모를 자랑했다.
한때 여성국극단 햇님달님의 전속고수로 순회공연을 다닌 바도 있다. 서울 국립창극단의 상임고수로 재직하였고, 한승호, 박동진, 안채봉, 오정숙, 조상현 등 명창들의 요청으로 완창발표회에서 지정고수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높이 쌓았다. 1993년 제13회 전국고수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서울생활을 접고 광주에 정착하면서 광주시립국극단 상임 수석지정고수로 활동하는 한편 북구 운암동에 판소리고법연구원을 열어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선생의 고법은 속이 후련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김명환의 끊어치는 대마디 대장단, 이정업의 화려한 북가락, 그리고 김성권의 엇장단을 두루 섭렵하여 본인의 독특한 고법을 이룩했기 때문에 가능한 평가이다.